월천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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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25.

    by. 월천공방

    목차

      1. 서론 │ 엿은 먹는 것 이상이었다

       

      한 조각 엿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골목의 정서였고, 아이들의 설렘이었으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의 리듬이었다. 엿장수가 등장하면 동네는 술렁였다.

      “딱! 딱!”
      둥근 쇠붙이를 서로 부딪혀 울려 퍼뜨리는 소리, 그 리드미컬한 금속음은 시각보다 빠르게 귀로 도착하는 광고이자 음악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엿장수는 거의 볼 수 없다. 그의 외침도, 리어카도, 무쇠통도, 사탕처럼 단 엿도 기억 속으로 밀려나 있다.

      이 글에서는 엿장수라는 직업의 실체와 방식, 그들이 이루었던 유통 문화와 정서적 상징, 그리고 사라져간 사회문화적 배경을 통해 소리와 감정이 함께 팔리던 시대의 삶을 복원해본다.

       

      2. 엿장수는 누구였는가?

      2.1 직업의 정의

      엿장수는 집에서 제조하거나 공장에서 들여온 ‘엿’을 리어카나 손수레에 싣고 마을을 돌며 판매한 이동식 전통 간식 유통인이었다. 엿은 조청이나 곡물당을 졸여 만든 당밀 기반 간식으로, 한국 전통 간식의 대표 아이템이었고, 엿장수는 그것을 이동 상인의 형식으로 유통한 이들이다.

      2.2 판매 방식

      엿장수는 엿을 무쇠솥에 넣고 따뜻하게 데우고, 막대기로 늘려 잘게 잘라 일정량을 판매하거나, 때로는 물물교환 형식으로 거래했다. 중요한 상징은 ‘딱딱이’라 불리는 금속 타악기. 이 소리를 이용해 엿장수의 등장을 알리고 아이들의 귀를 사로잡으며 거리의 풍경을 ‘소리’로 채웠다.

       

      3. 엿장수의 하루 – 리어카 위의 이동 노동

      3.1 판매 루트와 전략

      엿장수는 고정된 가게가 없는 ‘발품형 상인’이었다. 학교 앞, 시장 근처, 주택가 골목을 중심으로 어린이들과 주부를 주요 고객층으로 삼았다. ‘딱딱이 소리’는 엿장수의 고유한 마케팅 도구였으며, 시간대별 이동 루트를 통해 단골고객과 구역별 고객층을 확보하는 전략적 영업을 펼쳤다.

      3.2 물물교환 문화의 정착

      엿장수의 독특한 판매 방식 중 하나는 헌 옷, 고철, 빈 병 등을 엿과 바꾸는 물물교환이었다. 아이들은 집에서 나온 잡동사니를 들고 나가 엿과 교환하거나, 때론 장난감과도 바꿨다. 이런 방식은 아이들에게는 놀이의 일부였고, 어른들에게는 재활용의 수단이었으며, 엿장수에게는 상품 회수와 고객 확보를 동시에 이루는 일석이조의 전략이었다.

       

      4. 엿장수는 왜 사라졌는가?

      4.1 소비 구조의 변화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전통간식은 유통과 구매의 중심에 있었지만, 대형마트의 등장, 초콜릿, 사탕, 젤리 등 다양한 대체 간식의 확산,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포장식품 선호로 인해 엿의 매출 자체가 급감했다. 특히 ‘엿’의 끈적함, 보관 불편, 소비자의 취향 변화는 엿장수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4.2 도시화와 상권 구조의 변화

      엿장수의 주요 판매 무대였던 ‘골목’과 ‘시골 장터’가 사라지고, 도시 재개발과 주거지 고층화가 확산되며 이동형 노점상 중심의 판매 구조 자체가 붕괴되었다. 또한 ‘길거리 판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 노점 단속 강화 역시 엿장수의 설 자리를 없애는 원인이 되었다.

      4.3 기술의 부재와 후계자 단절

      엿 제조와 판매는 특별한 기계 없이 손으로 이루어졌으며, 후계자 없이 고령화된 장인층의 은퇴는 엿장수라는 직업 자체를 역사 속으로 밀어 넣게 만들었다.

       

      엿장수의 잊혀진 직업과 추억의 소리

      5. 엿장수의 문화적 의미 – 소리로 기억되는 직업

      5.1 소리와 정서의 결합

      “딱! 딱!”

      이 단순한 금속음은 아이들에게는 간식의 신호였고, 어른들에게는 골목의 리듬이자, 누구에게나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알려주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마을의 한켠을 채우는 정서적 사운드, 도시화되기 전 공동체적 삶의 사운드스케이프였던 것이다.

      5.2 이동 상인의 사회문화적 기능

      엿장수는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보를 전하고, 동네 사람들과 안부를 나누고, 아이들의 놀이터를 지나는 이동형 문화 전달자였다. 그가 사라졌다는 것은 정서를 운반하던 길거리 상인의 문화가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6. 결론 │ 달콤한 기억의 퇴장,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소리

      엿장수는 이제 더 이상 거리에서 볼 수 없는 직업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울리던 ‘딱딱이’ 소리는 아직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그 소리는 단순한 장사의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골목을 채우던 삶의 리듬, 일상을 깨우던 알람, 기다림과 설렘이 깃든 정서적 소리였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엿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엿을 팔던 사람과, 그가 불러낸 소리와 정서, 그리고 시대의 감성이다.

      달콤했던 직업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문화의 여운은 오늘도 우리의 귀와 마음속 어딘가에서 ‘딱! 딱!’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