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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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25.

    by. 월천공방

    목차

      1. 서론 │ 쓰레기를 줍는 일이 곧 도시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길 한복판, 삐걱거리는 손수레를 밀며 낡은 종이, 고철, 빈 병, 옷가지 등을 수거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흔히 “고물상 수레꾼”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대개 이른 새벽 혹은 한낮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 도시의 ‘버려진 것들’을 모아 다시 유통 가능한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비공식 재활용 시스템의 일꾼이었다. 그들의 손길은 쓰레기를 줄였고, 거리의 풍경을 정리했으며, 도시의 순환 구조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거의 사라졌다. 고물상 수레꾼이라는 직업은 ‘비위생적’이거나 ‘낙후된’ 것으로 여겨졌고, 현대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점점 자취를 감췄다.

      이 글에서는 고물상 수레꾼이라는 직업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이들이 담당한 도시 환경 속의 구조적 역할, 그리고 쓰레기라는 소재가 시대마다 어떻게 달리 해석되었는지를 살펴보며, ‘사라진 직업’과 함께 잊혀진 도시의 또 다른 주체들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2. 고물상 수레꾼이란 누구인가?

      2.1 직업의 개요

      고물상 수레꾼은 폐지, 고철, 유리병, 플라스틱, 의류 등 재활용 가능한 ‘고물’을 수거하여 동네 고물상이나 중간 수집처에 판매하는 이동 노동자였다. 주로 수레나 리어카를 이용해 이동하며 거리, 시장, 아파트 단지, 학교, 식당가를 돌며 버려진 자원들을 수집했다.

      이들은 공식적인 근로자로 등록되지 않은 비정형 노동자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도시 빈민층의 대표적 생계형 직업군이었다.

      2.2 연령과 성별

      • 대부분 노년층 혹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중장년층
      • 남녀 모두 있었으나, 도시 노년 여성의 비중이 높았다
        → 육체적 강도가 덜한 폐지나 의류 수거에 종사

       

      3. 도시 생태계를 지탱한 보이지 않는 손

      3.1 ‘비공식 재활용 시스템’의 핵심

      고물상 수레꾼은 현대적 재활용 시스템이 정비되기 전 혹은 그 외곽에서 도시의 자원순환을 실질적으로 실현하던 존재였다.

      • 폐지 → 제지 공장
      • 고철 → 제련소
      • 병과 캔 → 소분 판매업체

      그들이 수거한 자원은 단순히 ‘쓰레기’가 아니라, 도시 자원의 2차 회로를 돌리는 연료였다.

      3.2 가난과 생존의 실천

      이들은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새벽부터 거리로 나서고, 수레에 가득 실은 무게를 견디며 하루 종일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예상 수익은 폐지 1kg 당 50~100원, 병이나 캔 개당 10~30원, 정도로 매우 낮았고, 하루 수입은 12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일은 학력, 경력, 나이에 상관없이 진입이 가능했고, 당장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후의 안전망 같은 일자리였다.

       

      4. 쓰레기의 사회적 위상 – 시대에 따라 달라진 가치

      4.1 전통 사회의 ‘물건의 수명’

      과거 한국 사회는 모든 물건을 고치고, 덧대고, 물려주며 오래 쓰는 문화였다. 신발은 덧버선과 고무창으로 보강되었고, 옷은 누더기로 다시 만들어졌으며, 이불과 이불솜은 다시 틀어 썼다. 이 속에서 고물상 수레꾼의 일은 단순한 쓰레기 수거가 아니라 물건의 수명을 늘리는 재사용 문화의 일환이었다.

      4.2 산업화 이후의 ‘폐기’ 문화

      1970년대 이후 대량 생산 체계의 보급과 소비 중심의 생활 문화 확산으로 고장이 나거나 낡은 물건을 버리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 변화는 물건을 다시 쓸 줄 아는 이들이 ‘낡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고물상 수레꾼의 노동을 천대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5. 왜 고물상 수레꾼은 사라졌는가?

      5.1 재활용 산업의 구조화

      • 국가 차원의 분리배출 정책 강화
      • 민간 재활용업체의 수거 독점 시스템 구축
        → 개인이 수거하고 판매할 수 있는 루트가 급격히 축소

      특히

      • 아파트 단지 내 재활용 품목의 수거권 독점이 일반화되며 과거 고물상 수레꾼이 접근하던 수익 루트가 차단되었다.

      5.2 고령화와 노동 강도의 불균형

      • 수레 한 대당 50~70kg 이상의 무게
      • 여름 폭염, 겨울 한파 속 작업
        노년층이 지속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신체적 한계

      이로 인해

      • 건강 악화, 사고 위험 증가
      • 젊은 세대의 진입 기피로 이어지며 자연스러운 소멸 구조에 진입하게 되었다.

      5.3 도시의 미관과 규제

      도시 미관 저해, 교통 방해, 위생 문제 등을 이유로지방자치단체의 무단 노점·노상 수레 단속 강화 공공공간에서의 활동 자체가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구조 속에서 고물상 수레꾼은 제도적으로 퇴출되었다.

       

       

      고물상 수레꾼, 사라진 일자리와 쓰레기의 역사

      6. 고물상 수레꾼이 남긴 유산

      6.1 자원 순환의 주체로서의 시민

      그들의 존재는 쓰레기를 단순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환하는 일이라는 사고 전환을 가능케 했다. 고물상 수레꾼은 재활용과 자원순환의 생활화된 주체였다. 오늘날의 환경운동,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은 그들의 노동을 기초로 하여 확장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 도시에 대한 권리와 노동의 흔적

      그들은 도시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누구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했고, 도시가 눈치채기도 전에 조용히 무언가를 정리하고 떠난 사람들이었다. 고물상 수레꾼은 ‘쓰레기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를 통해 도시를 유지시킨 사람’이었다.

       

      7. 결론 │ 수레는 멈췄지만, 도시의 기억은 굴러간다

      고물상 수레꾼이라는 직업은 이제 도시의 풍경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밀던 수레에는 단지 고물만이 실려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노동, 생존, 순환, 책임, 공동체, 가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잊는다. 하지만 도시란 결국 그들이 있기에 굴러갈 수 있었던 공간이다.

      그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들이 했던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도시의 청결과 자원순환은 바로 그들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