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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 다방이라는 공간, 그리고 달리는 노동자
1970~1990년대의 대한민국 도시에는 특유의 정취와 기능을 함께 지닌 공간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다방(茶房)’.
커피를 파는 장소이자,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던 도시의 사교 허브였다. 그리고 그 다방의 얼굴이자 발이 되어 골목마다 커피를 배달하던 존재가 있었다.다방 배달부.
그들은 주로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오토바이나 도보로 커피를 나르며 사무실, 공장, 상점, 심지어 공공기관까지 다방 커피를 공급하던 도시 유통 구조의 독특한 일원이었다. 오늘날 거의 사라진 이 직업은, 단순히 커피를 운반하는 인력이 아니라 도시 소비문화의 촉매자이자, 젠더와 계급이 교차하던 사회문화적 상징이었다.이 글에서는 다방 배달부라는 직업이 어떤 구조에서 작동했으며, 그들이 수행한 노동의 실체와 사회적 위상은 어땠는지, 왜 그리고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살펴본다.
2. 다방 배달부란 누구였는가?
2.1 직업의 개요
‘다방 배달부’는 고정된 다방에 소속되어, 전화나 주문으로 접수된 커피를 오토바이, 자전거, 혹은 손으로 운반하여 고객에게 직접 배달하는 즉시형 소상점 서비스 인력이었다. 그들은 다방의 수익을 좌우하는 핵심 실무자였으며, 다방이라는 공간이 배달 중심의 서비스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2.2 성별과 연령대
주로 20~40대 여성 일부는 남성도 있었으나, 다방 운영과 배달업무가 대부분 여성에게 집중됨.
배달을 맡은 여성은 종종 도시 빈민 여성, 이주 여성, 학력이 낮거나 가정 생계를 책임진 여성들이었다.
3. 다방 배달부의 일상 – 커피를 넘어선 배달 노동
3.1 하루의 업무 흐름
- 오전 9시~10시: 첫 주문 접수 시작
- 오전~오후 내내: 전화 주문 대응 → 커피 제조 보조 → 이동 배달
- 오후 5시 이후: 단골 응대, 외상 관리, 기물 회수 등
배달의 속도, 정확도, 고객 응대 방식은 단골 확보와 다방의 생존에 직결되는 중요한 경쟁 요소였다.
3.2 단순한 운반 이상의 기능
다방 배달부는 단지 커피를 나르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고 때로는 업무적 소통을 중개하며 다방과 사회를 연결하는 ‘중간 관리자’로 기능했다.
예: “이 사무실엔 설탕 덜 넣고, 종이컵 말고 유리잔.”
이러한 세세한 요청을 기억하고, 반영하며, 한 사람의 노동 안에 ‘서비스·물류·관계 유지’가 함께 작동했던 것이다.4. 사회적 위치 – 이동하는 여성 노동의 표상
4.1 비가시화된 저임금 여성 노동
다방 배달부는 계약도 없고, 보험도 없고, 최저임금 개념도 적용되지 않았던 비정규·비공식 노동자의 전형이었다. 하루 10시간 가까이 움직이며 받는 임금은 커피 한 잔당 100~200원꼴.
오토바이 유지비, 점심값, 비까지 오면 실수익은 하루 1만2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이 일을 택한 이유는 즉시 일할 수 있고 별도의 자격이 필요 없으며 가족 부양과 병행 가능한 유일한 경제 진입로였기 때문이다.
4.2 도시 속 젠더화된 이동 노동
사회는 이들을 “다방 아가씨”, “커피 배달하는 여자”, 때로는 더 낮고 불명확한 호칭으로 불렀다. 이는 여성의 노동을 ‘노동’이 아닌 부차적 활동으로 간주했던 당시 인식, 배달이라는 행위를 ‘도시 여성의 위험한 외부 노출’로 인식한 사회적 시선의 편향이 만들어낸 것이다.
즉, 다방 배달부는 남성 중심의 도시 공간에서 여성이 노동자로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위태롭게 간주되던 시절의 증거였다.
5. 왜 사라졌는가?
5.1 다방 문화의 쇠퇴
1990년대 후반부터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확산,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문화 정착, 개인 취향 중심의 소비 전환으로 전통 다방의 입지는 점차 축소되었다.
배달 중심 다방 역시 젊은 층 유입 감소, 기존 고객의 노령화, 외식산업 전체의 구조 재편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5.2 배달 산업의 시스템화
동시에 배달 산업은 배달앱 기반 주문 체계, 계약기사 시스템, 실시간 GPS 기반 추적 으로 전환되며 ‘사람 중심, 기억 중심, 관계 중심’이었던 다방 배달부의 일자리는 기계화·시스템화된 플랫폼 노동으로 대체되었다.
6. 다방 배달부가 남긴 문화적 흔적
6.1 비공식 서비스 산업의 역사
다방 배달부는 외식 산업의 사각지대에서 가시화되지 않던 서비스 노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온 도시 노동사 속 인물이었다. 그들은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들의 이동 루트는 도시의 골목을 잇고, 그들의 고객 관계는 도시의 인간 네트워크를 유지시켰다.
6.2 정서적 서비스의 원형
오늘날 '감성 마케팅' '정성 배송' 등의 개념은 결국 다방 배달부가 이미 실천해온 고객 맞춤형 응대의 연장선이다. 그들은 고객의 사소한 표정까지 기억하고, 사무실 분위기를 파악해 주문을 예측하며, 때로는 말 한마디 없는 배려로 신뢰를 쌓았다. 이것은 매뉴얼 없는 서비스의 예술이자, 기계화된 배달 체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적 온기였다.
7. 결론 │ 사라진 커피의 배달꾼, 도시의 골목을 걷던 사회
이제는 커피가 앱으로 오고, 배달 기사는 이름조차 남지 않는다. 그러나 한때는 이름 없는 여성들이 도시의 리듬을 실어 나르며 작은 커피잔 하나에 노동, 관계, 존중을 담았다. 다방 배달부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지나간 골목은 여전히 ‘사람이 직접 움직이고 전하던’ 도시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다. 그들의 노동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존재했으며, 사라졌지만 오늘을 만든 도시 서비스의 기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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