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공방

좋은 정보 공유합니다.

  • 2025. 4. 23.

    by. 월천공방

    목차

      리어카 국밥장수 – 잊혀진 직업 속의 골목 밥상

      1. 서론 │ 국밥 한 그릇이 위로가 되던 시절

      거리 어귀에 머물던 훈훈한 김, “뜨끈한 순댓국 있어요” 걸쭉한 국물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지면 그날의 첫 끼를 놓친 사람들의 발길은 저절로 리어카 앞에 멈췄다.

      리어카 국밥장수, 그들은 작고 낡은 수레 하나에 솥, 간이 의자, 접시 몇 개, 숟가락을 얹어 한 끼 식사를 나르는 거리의 식당이자, 서민의 입맛을 지켜온 도시의 풍경이었다. 오늘날, 위생과 환경, 배달의 편리함 속에서 더 이상 보기 어려운 이 직업은 단순한 이동식 음식 판매를 넘어서 도시 빈민의 식문화, 삶의 리듬, 그리고 골목 공동체의 정서를 품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리어카 국밥장수라는 직업의 등장 배경, 그들의 노동 세계와 문화적 의미, 그리고 사라져가는 과정을 통해 도시와 사람, 노동과 식사의 교차로를 조명하고자 한다.

       

      2. 리어카 국밥장수란 누구였는가?

      2.1 직업의 개요

      리어카 국밥장수는 고정된 식당 없이 리어카를 이용해 국밥(순댓국, 내장탕, 설렁탕 등)을 조리하고 길거리, 공사 현장, 시장 골목, 터미널 근처 등지에서 판매하던 이동형 음식 판매인이다. 이들은 식당을 낼 자본이 없거나, 고정적인 장소를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솥 하나, 불 하나, 국물 하나로 생계를 이어가던 자영형 상인이었다.

      2.2 주요 고객층

      • 노동자, 일용직 근로자, 인근 상인, 노숙인
      • 저렴하고 따뜻한 한 끼가 절실한 사람들
      • 간단히 먹고 빨리 일터로 향해야 하는 서민층

      이들에게 국밥은 몸을 채우는 음식인 동시에 위로가 되는 존재였으며, 국밥장수는 그 온기를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3. 하루의 시작 – 준비와 이동의 노동

      3.1 새벽의 국물 끓이기

      국밥장수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 전날 밤부터 삶아둔 돼지머리, 내장, 순대
      • 정성껏 우려낸 사골 국물
      • 준비된 양념장, 대파, 깍두기 등 간단한 반찬

      이 모든 재료는 좁은 주거공간과 조리기구 안에서 미리 준비된다. 그리고 날이 밝기 전, 솥과 식기, 불판을 실은 리어카를 끌고 거리로 나서는 순간, 국밥장수의 하루가 시작된다.

      3.2 위치 선정과 고객 파악

      국밥장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대, 장소를 선택해 아침 6시부터 9시 사이, 점심 12시부터 2시 사이 집중 판매 골목에 접이식 의자를 펴고, 국밥 한 그릇을 말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동식 장사는 순간의 판단력과 거리 감각, 고객 유입 예측력이 생명이다. 장사도, 밥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좌우되는, 철저한 현장 노동자였다.

       

      4. 국밥장수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밥상

      4.1 조리기술과 손맛

      국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고기 손질, 내장 세척, 국물 우려내기, 간 맞추기"  모든 과정이 경험과 감각의 연속이다. 특히 거리 환경에서는 강풍, 먼지, 좁은 공간, 불균일한 화력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익힌 재료를 재빠르게 덜어내고, 즉석에서 말고 데우고 간 맞추는 손놀림이 국밥장수의 생존 기술이자 노하우였다.

      4.2 거리식당의 정서

      리어카 국밥의 매력은 단지 맛에 있지 않았다. 국물 한 숟갈에 땀이 식고, 밥 한 덩이에 마음이 든든해지고, 장수와 손님 사이의 짧은 눈인사와 덕담이 오가는 순간 이곳은 어느 식당보다 인간적인 식탁, 말 없는 위로가 오가는 정서의 공간이었다.

       

      5. 왜 사라졌는가?

      5.1 위생법과 노점 규제

      1990년대 중반 이후 노점상 단속 강화, 조리 음식의 거리 판매에 대한 위생 우려 확산, 거리 미관 정비 정책 등 이러한 흐름 속에서 리어카 국밥은 비위생적, 불법적, 낡은 방식으로 간주되며 제도 밖으로 밀려났다.

      5.2 소비자 인식과 문화의 변화

      현대인은 실내 공간, 청결한 환경, 브랜드를 선호하고 음식의 '경험'보다 '시각적 만족감'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길거리 음식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그 결과 길 위에서 먹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보다, 포장된 밀키트나 배달 앱 속 메뉴를 택하게 된 것이다.

       

      6. 리어카 국밥장수가 남긴 문화적 의미

      6.1 도시 빈민의 식문화 유산

      국밥장수는 가난한 도시인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 음식 제공자였고, 도시 한켠의 비공식 복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 그릇 1000원짜리 국밥이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를 시작하게 했고 노숙인에게 인간다운 식사를 선물했고 상인을 위한 짧은 휴식을 제공했다. 이것은 시장 바깥에서 작동하던 대안적 식문화 시스템이었다.

      6.2 식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

      리어카 국밥은 상업적이지 않았지만, 진심이 있었다.

      메뉴는 없었지만, 마음은 담겨 있었다.
      음식이란 무엇인가, 식사란 어떤 행위인가를 가장 본질적으로 보여준 직업의 한 형태였다.

       

      7. 결론 │ 사라진 리어카 뒤에 남은 따뜻한 그릇

      리어카 국밥장수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 그들이 끓여낸 국물 냄새, 그 앞에서 먹던 사람들의 표정은 도시의 기억 속 훈김처럼 남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거리에서 국밥을 사먹는 사람도, 그것을 팔기 위해 수레를 끌고 다니는 사람도 없지만, 그 시절 그 밥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피워낸 인간성과 연대의 기록이었다. 사라진 국밥장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과 골목 풍경 속에서 한 그릇의 따뜻함으로 계속 우리를 먹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