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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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5. 6.

    by. 월천공방

    목차

      석등 조각사의 사라진 직업과 전통 석공예

      1. 서론 │ 돌에 생명을 새기던 장인

       

      한국의 고찰을 거닐다 보면 마당 한편에 우뚝 선 석등이 눈에 들어온다. 무거운 돌기둥 위, 정교하게 다듬어진 지붕 아래 불빛이 오갔을 공간. 그 석등 하나하나에는 오랜 시간과 정성, 그리고 장인의 손끝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석등을 직접 조각하던 석등 조각사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기계가 대체한 돌가공의 시대, 디자인 중심의 현대 조경 속에서 전통 석공예는 점차 기억의 기술이 되어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석등 조각사의 직업적 특성과 장인정신, 사라진 이유와 문화사적 의의를 조명하며, 전통 석공예가 현대에 남긴 의미를 돌아본다.

       

      2. 석등 조각사란 누구였는가?

      2.1 석등이란 무엇인가?

      석등(石燈)은 불교 사찰에서 법당 앞이나 탑 근처에 설치되던 돌로 만든 등불 장치다. 불의 빛은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고, 돌의 단단함은 불변과 진리를 의미한다.

      석등은 대개 ,기단부(아래 받침), 화사석(불을 넣는 공간), 옥개석(지붕), 보주(정상부 장식)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형식은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며 다양하게 발전했다.

      2.2 석등 조각사의 기술과 역할

      석등 조각사는 이러한 구조적 요소를 설계하고 조각하며, 미적 균형과 상징적 의미를 동시에 구현하는 기술자였다. 단단한 화강암이나 점판암을 사용하여 정밀한 각도와 비율, 균형을 고려하며 망치, 정, 끌 등의 수공 도구로 수십 시간에 걸쳐 한 조각의 석등을 완성했다. 이들은 단순한 돌 세공인이 아닌, 종교적 의미를 구현하고, 공간과 시간의 조화를 이루는 조형 예술가였다.

       

      3. 석공예 속의 장인정신

      3.1 “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석공예는 작은 실수 하나가 돌 전체를 쓸모없게 만들 수 있는 고도의 집중과 신중함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재료에 따라 망치의 강도를 달리하고, 온도와 습도에 따라 돌의 결을 고려하며 오차 없이 대칭을 구현해야 한다. 석등 조각사들은 “돌은 정직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만큼 기교보다 기본, 속임수보다 성실함이 요구되는 세계였다.

      3.2 디자인과 상징의 조화

      석등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불교의 우주관과 세계 질서를 시각화하는 구조였다. 기단부는 지상 세계, 화사석은 인간의 마음, 옥개석은 하늘을 상징하며 그 위에 놓인 보주는 깨달음의 완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석등 조각사는 단지 돌을 다듬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존재에 대한 철학을 시각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었다.

       

      4. 왜 사라졌는가?

      4.1 산업화와 조경문화의 변화

      1970년대 이후 건축자재의 산업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며 정형화된 석등, 기계로 깎은 돌 조각, 콘크리트와 레진으로 대체된 장식물이 대세가 되었다. 이와 함께 공간의 기능성과 경제성 중심 조경 설계가 확산되며, 석등 조각사의 예술적 감각과 정성은 시장에서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4.2 장인 수의 감소와 기술 전수의 단절

      석등 조각은 기계로는 대체할 수 없는 감각과 훈련이 필요했지만, 수익성 부족, 작업 공간 확보 어려움, 후계자 부재 등의 이유로 장인 수 자체가 급격히 감소했다. 지금은 일부 전통공예학교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중심의 보존 중심 활동만 이어지고 있다.

       

      5. 석등 조각사의 유산과 문화적 가치

      5.1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들던 조형 언어

      석등은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니다. 그 자리에 놓이는 것만으로 공간에 경건함과 시간의 층위를 더하는 상징물이었다. 석등 조각사가 돌에 새긴 선과 비율은 단지 조형이 아니라 풍경을 통제하고, 시선을 유도하며, 기억을 새기는 장치였다.

      5.2 ‘손으로 만든 시간’의 상징

      석등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수 주에 걸쳐 정성스레 다듬던 그 노동은 오늘날의 빠름과 효율성 중심 사회에서 보기 드문 시간의 밀도를 담고 있다. 그들의 손은 돌에 ‘불’을 새기고, 공간에 ‘무게’를 더하며, 사람의 마음에 ‘정숙’을 남겼다.

       

      6. 결론 │ 묵직한 침묵 속의 미학, 그리고 우리의 몫

      석등 조각사는 이제 거의 사라진 직업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석등 하나하나는 직도 전국의 사찰과 유적지 곳곳에서 묵묵히 시간과 공간을 지키고 있다. 돌은 말이 없다. 그러나 잘 깎인 석등은 그 자체로 시대를 말하고, 장인의 손길을 증언하며, 우리 삶에서 잃어버린 무게와 느림, 성찰의 감각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오늘 빨리 생산되고 쉽게 소비되는 것들 속에서 이런 장인의 손끝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것은 결국 시간을 어떻게 대하고, 기술을 어떻게 계승하며, 전통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석등 조각사의 사라진 일자리는 단지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한 시대의 손끝 감각과 세계관이 사라진 자리다. 이제 그 빈자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이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