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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 무너지지 않도록, 빗물 새지 않도록
한국 전통건축의 얼굴은 지붕이다. 그 곡선은 곧 건축물의 정신이자 풍경의 일부였으며, 비바람 속에서도 집을 지켜주는 실질적인 보호막이었다. 그 지붕 위에는 반드시 기와가 얹혔고, 그 기와를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관리하던 직업이 있었다. 바로 기와 수선공이다. 지붕은 매일 하늘을 마주한다. 강풍, 비, 눈, 더위와 추위 속에서 기와는 쉽게 금이 가고 틀어지고 떨어진다. 그 기와 하나하나를 오르고 살피고 고쳐내던 손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기와 수선공이라는 이름은 점점 사라지고, 이들의 기술은 기억 속으로 밀려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와 수선공이 담당했던 전통 건축 보수 기술, 특히 종묘와 같은 중요 문화재에서의 역할, 그리고 왜 이 직업이 사라졌는지를 중심으로 장인의 노동과 문화 보존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2. 기와 수선공이란 누구인가?
2.1 전통 건축과 기와의 역할
한국 전통 가옥은 흙과 나무, 그리고 기와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그중 기와는 햇빛을 반사하고, 물을 흘려보내며, 건물의 생김새와 위엄을 완성하는 핵심 마감재였다. 기와는 오랜 세월을 견뎌야 했지만, 정기적인 점검과 수리가 없이는 쉽게 파손되는 재질이다. 그런 까닭에, 기와를 보수하고 교체하는 전문 기술자, 즉 기와 수선공의 존재가 필요했다.
2.2 기와 수선공의 정의
기와 수선공은 기존 건축물의 지붕 기와를 철거 없이 유지·보수하는 기술자다. 기와의 손상 상태를 판단하고, 같은 색과 규격의 기와를 선택하거나 복원 제작하여 정밀하게 이어붙이는 숙련 노동을 수행한다.
이들은 종종 한옥 건축 장인과 혼동되지만, 신축이 아닌 ‘보존과 유지’에 특화된 역할을 담당했다.
3. 수선 작업의 기술과 절차
3.1 기와 수선의 기본 공정
- 점검
- 지붕 위에 올라가 파손·누락·함몰된 부분을 식별한다.
- 제거
- 손상된 기와를 정밀하게 들어내고, 흙과 기와가 맞물린 부분을 깨끗하게 정리한다.
- 교체 및 안착
- 동일 규격의 기와를 준비해 자연스럽게 이어 붙인다.
- 흔들림 없이 고정되도록 흙, 모래, 물을 적정 비율로 섞어 안착시킨다.
- 방수 확인
- 수선 후에는 비를 맞으며 빗물 흐름을 체크하거나, 물을 흘려보내어 누수 여부를 점검한다.
기와 수선은 단순히 새 기와를 덮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무게와 비율, 미감까지 고려한 기술적 조율의 과정이었다.
3.2 작업의 어려움
- 기와는 미끄럽고 깨지기 쉬우며, 지붕 위 작업은 고소작업에 해당해 늘 위험이 따랐다.
특히 기와의 색상과 질감을 맞추는 일은 문화재 건축일 경우 극도로 정교한 감식안과 손기술이 요구되었다.
4. 종묘와 같은 문화재에서의 역할
4.1 종묘 기와의 보존 의미
종묘는 조선 왕조의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 유서 깊은 건축물은 단순한 역사물이 아니라, 전통 건축 기술과 의례 문화를 동시에 담은 공간이다. 종묘의 지붕에 얹힌 기와는 백 년의 풍우를 견뎌야 했기에 정기적이고 전문적인 수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4.2 기와 수선공의 문화재 복원 참여
전통 기와는 공장 생산품이 아니라 토질, 굽는 온도, 손모양까지 고려해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한다.
종묘, 경복궁, 창덕궁 등의 기와 수리는 숙련된 수선공의 감각적 판단력과 손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기와 수선공은 국가의 역사적 건축물을 실질적으로 유지시키는 ‘문화의 실무자’였다.
5. 왜 기와 수선공은 사라졌는가?
5.1 건축 양식의 근본적 변화
- 현대 주거 환경은 기와 지붕이 아닌 콘크리트 평지붕, 샌드위치 패널, 슬레이트 지붕 등으로 바뀌었다.
- 건축 자재의 변화는 전통 기와와 관련된 기술 전반을 자연스럽게 주변화시켰다.
5.2 대형 건설 위주의 시공 방식
- 건축 자재가 산업화되면서 전문 수선 기술자보다는 설비 인력, 전기 배관 기술자가 주류가 되었고,
- 건축의 ‘정밀 보존’보다는 ‘신속한 철거와 교체’가 일반화되었다.
기와 수선공은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유지’보다 ‘대체’가 우선되는 산업 구조 속에서 자리를 잃었다.
5.3 전승의 단절
- 수선 기술은 도제식 전수로만 가능했지만, 경제적 보상이 낮고 진입 경로가 모호해 젊은 세대의 유입이 극도로 줄었다.
그 결과, 전통 기와 수선은 문화재 복원 전문가 일부에게만 남겨진 기술이 되었다.
6. 현대의 복원 기술과 전통 수선공의 역할
6.1 문화재 수리 기능인 제도
국가에서는 문화재 수리를 위한 전문 기능인을 인증하는 제도를 통해 기와 수선 기술의 보존을 시도하고 있다. ‘와공(瓦工)’이라 불리는 기와 기술자는 종묘, 궁궐, 사찰 복원 사업에서 필수 인력으로 참여하며, 전통 건축의 생존 가능성을 지키고 있다.
6.2 건축 미학으로서의 재조명
최근 전통 한옥에 대한 관심 증가와 함께 기와지붕의 형태미, 수선과 보존의 장인 정신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기와 수선공은 단지 옛 기술자가 아니라, 건축물에 시간을 덧입히는 ‘문화의 관리자’로 재조명되고 있다.
7. 결론 │ 무너지지 않도록, 기억되도록
기와 수선공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지붕 위에서 감지하던 균열의 징후, 물의 흐름, 흙의 질감은 지금도 문화재 복원 현장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한 장 한 장 기와를 들여다보며 세월의 흔적을 손끝으로 느끼고, 그 안에 균형과 미감을 되살리는 일.
그것은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기억을 복원하는 문화적 기술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지붕 위를 오르지 않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은 수백 년 된 건물의 지붕 위에서 지금도 조용히 역사를 지키고 있다.'잊혀진 직업 사전 – 사라진 일자리의 문화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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