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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 토기는 누군가의 등에 실려 움직였다
흙을 구워 만든 그릇, 옹기.
조선 후기까지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장독, 물독, 밥솥, 항아리, 찬합 등 생활 속 용기는 옹기였다. 그리고 이 무겁고 깨지기 쉬운 토기들을 한 집 한 집 찾아가 전해주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옹기장수다. 옹기장수는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다. 이들은 토기 제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유통인이고, 마을과 마을 사이를 연결한 생필품의 순환자였으며, 때로는 소식과 물물교환의 매개자이기도 했다.이 글은 옹기장수라는 직업의 역할과 기술, 옹기의 유통 구조, 그리고 이 전통적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 사회적 배경을 통해 지역문화와 노동의 관계를 되짚어본다.
2. 옹기와 옹기장수란 무엇인가?
2.1 옹기의 정의
옹기는 흙을 빚어 가마에서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낸 생활용 토기다. 기공(숨구멍)이 있어 공기 순환이 가능하고, 발효와 저장에 적합한 특성을 지녔다. 옹기는 곧장 무거웠고, 운반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만들어진 곳에서 각 가정에 직접 옮겨주는 전문 운반 상인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옹기장수였다.
2.2 옹기장수의 역할
옹기장수는 생산지(도요지)에서 옹기를 대량 구매한 뒤 그것을 등짐으로, 혹은 나귀, 소달구지에 실어 시골 마을과 장터로 이동하며 판매했다. 보통 직접 제작하진 않지만, 운반, 판매, 교섭, 보수까지 담당한 다기능 유통인이었다.
3. 옹기 유통의 구조와 지역 사회
3.1 도요지와 유통 경로
옹기는 특정 지역에서만 대량 생산되었다. 대표적으로 경북 의성, 전남 순천, 충북 괴산 등 가마와 점토가 풍부한 곳에서 옹기 제작이 이루어졌다. 옹기장수는 제작지에서 옹기를 한꺼번에 매입한 후 수십 리 길을 걸어 인근 마을로 옮겼고, 일정 기간 한 마을에 머물며 물물교환 또는 판매를 진행했다. 그들은 수공예 생산품의 유통을 담당한 지역 상업의 실핏줄이었다.
3.2 물물교환과 장터문화
현금을 지닌 사람이 드물던 시대, 옹기장수는 쌀, 콩, 고춧가루, 천 조각 등 물건과의 교환을 통해 옹기를 판매했다.
그들은 장터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깊은 산촌이나 외진 어촌까지 찾아가 토기의 보급망을 물리적 노동으로 형성했다.
4. 옹기 운반의 기술과 위험성
4.1 운반 방식
옹기장수는 등짐틀(지게)에 옹기를 수직으로 쌓아 운반했다. 항아리 속에 작은 옹기를 넣고, 헝겊이나 짚으로 완충했다. 보통 20~30kg 이상을 지고 수 km 이상 이동했다. 이러한 구조적 운반 방식은 균형 감각, 근력, 운반 동선의 계산 등 고도의 직감과 숙련도를 요하는 기술이었다.
4.2 깨짐에 대한 책임
옹기는 매우 잘 깨지는 물건이었기에, 운반 도중 파손이 나면 판매자가 직접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는 옹기장수에게 심리적 압박이자 경제적 부담이었다. 그들은 늘 신중한 걸음과 책임의 노동 속에서 일했다.
5. 왜 옹기장수는 사라졌는가?
5.1 현대적 소재의 등장
1970년대 이후, 스테인리스, 플라스틱, 유리 제품이 대량 생산과 유통을 가능케 하면서 옹기의 실용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특히 냉장고의 등장과 함께 발효 및 저장 용도의 필요성도 감소하면서 옹기는 더 이상 필수 품목이 아니게 되었다.
5.2 운반 방식의 변화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물류 시스템이 체계화되면서 더 이상 등짐이나 나귀를 통한 판매 방식은 경쟁력을 잃었다. 도매 유통과 상점 판매의 구조 속에서 인간의 발걸음에 의존한 전통 유통업은 설 자리를 잃었다.
5.3 마을 공동체의 해체
옹기장수는 마을마다 돌아다니는 유동적 판매자였지만, 도시화, 이주, 공동체 약화로 이들의 활동 무대였던 장터와 오지마을 자체가 축소되었다.
6. 옹기와 옹기장수의 현대적 복원 노력
6.1 옹기문화축제와 체험공방
일부 지자체에서는 옹기문화축제나 옹기 전통마을을 운영하며 교육, 전시, 체험을 통해 잊힌 토기 문화와 유통 직업을 알리고 있다.
이러한 복원은 단순한 상품 판매가 아닌 문화자산으로서의 재해석과 계승의 의미를 담고 있다.
6.2 옹기장수의 노동유산
오늘날 '로컬 유통', '슬로우 푸드', '전통 공예'에 대한 관심은 과거 옹기장수의 생태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유통 방식에 주목하게 한다.
그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며 물건을 전한 유통의 원형이었다.7. 결론 │ 흙, 불, 사람의 길 위에서
옹기장수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옮긴 것은 단지 흙으로 만든 그릇이 아니었다.
그들은 흙과 불의 예술품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마을과 공동체의 순환을 등에 지고 옮긴 문화의 전달자였다.오늘날 우리는 클릭 한 번으로 물건을 받는다. 그러나 한 시대는 땀과 책임으로 만들어진 등짐 유통망 위에서 흙 그릇 하나에 정성과 생존을 담아 전했다. 옹기장수의 직업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소리 없는 유통의 미학과 노동의 품격은 오늘날에도 가치 있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릇이 아니라, 그릇을 옮긴 사람들의 길과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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