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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 겨울의 시작은 연탄으로부터였다
한겨울 아침, 담벼락 사이로 피어오르던 연탄 연기. 검은 연기에 뒤덮인 벽, 연탄가스를 피하겠다며 창을 열어두던 습관, 리고 무거운 연탄을 한 장씩 안고 계단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연탄배달부’라 불렸다. 단순한 배달 노동자가 아니라, 겨울의 시작과 끝을 책임진 도시의 근육이었다. 오늘날은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버린 이 잊혀진 직업, 연탄배달부를 통해 도시 빈민의 주거 환경과 노동의 풍경, 그리고 연탄이라는 에너지의 역사적 궤적을 되돌아본다.
2. 연탄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했는가?
2.1 도시를 움직인 고체연료
연탄은 석탄을 분쇄해 점토와 섞은 뒤 원형 틀에 눌러 만든 고체연료다. 연소 효율이 높고, 오랫동안 불이 유지되는 특징이 있어 보일러, 아궁이, 온돌방 난방, 취사에 모두 사용되었다. 특히 1960~80년대에는 도시 중산층과 빈곤층 모두에게 보편적인 난방 수단이었다.
2.2 전기와 가스 이전의 주생활 필수품
지금이야 보일러 한 번이면 집 전체가 따뜻해지지만, 과거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연탄을 교체하고 확인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연탄불을 다시 살리고, 저녁엔 음식과 방을 함께 데우던 에너지의 중심축이었다. 그렇기에 연탄은 ‘에너지’ 그 자체이자, ‘삶의 온도’로 직결되는 생활의 필수재였다.
3. 연탄배달부의 하루 – 무게와 계단의 노동
3.1 새벽에 시작되는 하루
연탄배달부의 하루는 아직 어두운 새벽부터 시작됐다. 연탄창고에서 주문 받은 수량을 리어카에 싣고, 각 가정에 정해진 시간 내 배달을 시작한다. 고객들은 보통 하루 전날 전화로 주문했고, 그 수량은 보통 50장~100장, 많게는 300장 이상이었다.
3.2 리어카를 끌고 언덕을 넘다
연탄은 장당 무게가 약 3.54kg.
100장을 한 번에 배달하려면 무게만 350~400kg이다.
이를 끌고 골목, 언덕, 계단, 주택가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일은 단순한 배달이 아니라 극한의 근육노동이었다. 비가 오면 미끄럽고, 눈이 오면 바퀴는 얼음에 박히고, 추위에 손은 갈라지고, 입김은 연기처럼 흩어졌다.3.3 검댕이 옷과 얼굴을 덮다
연탄은 무를수록 검댕이 튀고, 깨지면 미세한 탄분이 호흡기를 자극했다. 배달부의 손톱 밑, 얼굴, 옷, 심지어 식사 그릇에도 검은 가루가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연탄을 옮겼다. 왜냐하면 겨울의 따뜻함은 그들 손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4. 연탄배달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
4.1 개인 사업자 형태의 배달 문화
연탄배달부는 대개 연탄판매소에 고용되거나, 직접 리어카를 갖고 동네를 순회하는 자영업 형태였다.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하고, 배달 후에는 대금을 현금으로 받았다. 성수기에는 하루 5~6건 이상 배달, 하루 최대 1,000장 이상도 가능했다.
4.2 지역 내 관계망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고정 고객이 생기면, 아파트 단지, 반지하 주택, 가스가 보급되지 않은 단독주택 지역에서 꾸준히 수요가 발생했다. 배달부들은 고객 집의 구조를 외우고 있었고, “2층 창문 앞에서 돌면 바로 연탄통이 있다”는 식으로 경로를 미리 머릿속에 그려두고 움직였다.
5. 도시 빈민과 연탄 – 따뜻함은 사치였다
5.1 연탄은 저소득층의 주난방 수단이었다
도시 고층 아파트에 보일러가 들어갈 때, 여전히 많은 가정은 반지하, 옥탑방, 골목길 셋방에서 연탄 한 장으로 밤을 견뎠다. 겨울엔 연탄 한 장을 아껴 아침까지 남기고, 부득이한 경우엔 재떨이의 재까지 퍼다 재활용했다. 이런 집에서 연탄배달부는 단순한 배달자가 아니라 온기를 전달하는 생존 파트너였다.
5.2 연탄가스 중독과 불완전 연소의 위험
문을 꼭 닫고 자다보면 일산화탄소 중독사고가 잦았고, 이를 막기 위해 창문을 살짝 열고 잤으며, 그래도 불안해 가스 감지기를 설치한 집도 드물었다. 가끔은 연탄이 깨져 화재가 발생하거나, 연탄가루로 인한 호흡기 질환도 흔했다.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었던 에너지였다.
6. 연탄배달부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6.1 도시가스의 보급
1980년대 후반부터 도시가스 보급률이 급증하면서 연탄의 수요는 급격히 줄었다. 가스는 연료 저장 공간이 필요 없고, 버튼 하나로 난방과 취사가 모두 가능한 방식이었다. 이로써 연탄은 단숨에 ‘낡은 것’이 되었고, 연탄배달부 역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6.2 아파트 중심 주거 구조의 변화
아파트 보급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공동 배관, 바닥 난방이 표준화되고, 연탄 보일러는 더 이상 주택 설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리어카가 오갈 수 없는 구조, 연탄 보관창고가 사라진 구조, 연탄은 도시의 설계에서 지워졌다.
7. 연탄배달부가 남긴 문화적·사회적 의미
7.1 도시 생태계의 ‘숨은 노동자’
연탄배달부는 도시 에너지 공급 체계의 비공식 인프라였다. 정책이 닿지 않는 곳, 인프라가 미치지 못한 곳, 바로 그곳에서 도시의 따뜻함을 전해준 이들이었다. 무거운 연탄을 나르던 그들의 손에는 단순한 노동 이상의 책임과 기억이 담겨 있었다.
7.2 자활의 상징, 생계형 노동의 원형
연탄배달은 자본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었고, 자립을 꿈꾸던 가난한 청년, 실직자, 중년 남성들의 재기의 수단이 되었다. 오늘날 ‘자활센터’, ‘사회적 기업’이 등장하기 전, 그들은 이미 일하는 자존감을 갖고 거리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8. 결론 │ 불은 사라졌지만, 따뜻함은 남아야 한다
연탄은 더 이상 우리 일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 연탄배달부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옮겨준 것은 단지 탄 덩어리가 아니라 겨울을 견디게 한 온기, 이웃을 살게 한 희망이었다. 지금의 도시에는 더 이상 연탄 연기가 나지 않지만, 우리가 여전히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그 모든 겨울을 묵묵히 지켜줬기 때문이다. 직업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사라져선 안 된다. 연탄배달부의 하루를 떠올릴 수 있는 도시, 그런 사회가 진짜 따뜻한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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