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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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21.

    by. 월천공방

    목차

       

      1. 서론 │ 물은 언제나 있었지만, 언제나 가까이 있진 않았다

       

      지금 우리는 수도꼭지를 돌리면 언제든 물을 얻는다. 정수기에서 나오는 시원한 물 한 컵, 세탁기와 샤워기, 그리고 식기세척기까지. 물은 ‘당연한 것’처럼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 있다. 하지만 단 몇십 년 전만 해도, 물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이었고, 그 물을 사람의 등이나 수레에 실어 나르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우리는 ‘물장수’라 불렀다. ‘사라진 일자리, 물장수’는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이뤄낸 도시 생존의 물길과 노동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물장수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그들이 남긴 시대적 의미를 복원해본다.

       

      사라진 일자리, 물장수의 시대적 의미

      2. 물장수란 어떤 직업이었나?

      2.1 인프라의 빈자리를 메우던 사람들

      물장수는 주로 우물, 펌프, 공동수도 등에서 물을 퍼와, 가정마다 배달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었다. 도시의 상수도 시스템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물은 각 가정이 직접 ‘구해야’ 하는 하루의 중요한 과제였다. 수레에 동이를 싣고 골목골목을 다니며 “물 사요!” 하고 외치던 풍경은 과거 도시의 가장 일상적인 한 장면이었다.

      2.2 물은 상품이자 노동의 총합

      물장수는 물을 ‘단순히’ 퍼 나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이 가져다주는 물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돼 있었다:

      • 무게를 견디는 육체노동
      • 거리와 시간의 경로 조절
      • 고객과의 관계 유지
      • 계단 오르기, 물 넘침 방지 등 기술적 세심함

      즉, 물값은 단순한 물 자체의 가치가 아닌, 그 물을 옮기는 데 들어간 사람의 ‘노동 가치’였다.

       

      3. 물장수의 하루 – 땀과 물의 교환

      3.1 새벽: 우물과 펌프에서 하루를 시작하다

      물장수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됐다. 먼저 자신이 물을 길어올릴 수 있는 우물이나 공동수도로 향했다. 이곳은 때로 줄이 길었고, 좋은 위치 확보를 위해 경쟁이 치열했다. 물은 무게가 생명이었다. 양동이나 물동이를 넘치지 않을 만큼 꽉 차게, 그러면서도 흘리지 않도록 적절히 담는 것이 기술이었다. 그렇게 마련된 물은 지게에 싣거나 수레에 올려, 삐걱대는 바퀴 소리와 함께 골목을 돌기 시작한다.

      3.2 오전: 배달과 대금 수령

      오전 시간은 배달이 집중되는 시간대다. “계단 없는 집부터 먼저”, “할머니가 정해진 시간에 물 받아야 하니까 우선 방문” 이런 식으로 배달 순서를 정한다. 물을 23말씩 가져다 주면, 요금은 1말당 1020전, 혹은 5~10환 정도였고, 하루 10집을 돌아도 큰 수익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가난한 도시민들에게 “그래도 생계를 잇게 해주는 귀한 수입원”이었다.

      3.3 오후: 물 부족과 재배달

      기후에 따라 물 공급 상황은 달랐다. 가뭄에는 우물 수위가 낮아져 공급이 힘들었고, 우기에는 진흙탕을 뚫고 다녀야 했다. 특히 여름에는 수요가 늘고, 물이 상할 수 있어 하루 3~4회 왕복하는 고된 스케줄이 되었다. 고객 중에는 무상으로 부탁하는 이들도 있었고, 어린이, 노인, 산모가 있는 가정에는 조금씩 더 퍼주는 관례도 있었다. 삶의 온도만큼 물도 인심으로 흘렀다.

       

      4. 물장수가 등장한 사회적 배경

      4.1 상수도 인프라의 부재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의 상수도 보급률은 20~30%대에 불과했다. 그나마 수도관이 설치된 지역도 물의 질이 나쁘거나 공급이 불규칙한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시민들은 자신이 직접 물을 구하든지, 혹은 누군가에게 비용을 주고 공급받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물장수라는 자생적 생존 직업군이었다.

      4.2 물의 위생성과 신뢰의 문제

      상수도라고 해도 초기에는 녹물이 섞이거나, 관로의 부식 문제로 인해 음용에 부적합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물장수들이 공급한 우물물은 정기적으로 손님이 마셔보고 신뢰를 형성한 ‘인증된 물’이었다. 즉, 관계 중심의 위생 신뢰 체계가 작동하던 시기였고, 물장수는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 지역 기반의 ‘물 전문가’로 통했다.

       

      5. 물장수 직업의 소멸 원인

      5.1 상수도 보급률 급등

      1970년대 이후 정부는 도시화와 주거개선 정책을 추진하며 서울·부산·대구 등 대도시 중심으로 집집마다 상수도관 설치를 의무화하게 된다. 이로써 대부분의 도시 거주자는 “물을 스스로 얻는”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 변화의 결과, 물장수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직업군이 되어버렸다.

      5.2 생수 산업과 정수기 문화의 등장

      1980~90년대에는 생수 브랜드의 등장가정용 정수기 보급이 일어나면서, 물에 대한 안전성 + 편의성 + 고급화가 급격히 높아졌다. 그동안 신뢰 기반으로 작동하던 ‘물장수’의 영역은 이제 ‘정제수’와 ‘기술력’에 밀려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6. 물장수가 남긴 문화적·철학적 가치

      6.1 인프라 이전의 도시를 가능하게 한 이름 없는 노동

      우리는 늘 건축가, 정책가, 기술자를 도시 발전의 주인공으로 기억하지만, 물장수 같은 사람들은 그 도시가 움직이게 만든 ‘숨은 축’이었다. 그들은 인프라가 미치지 못한 틈새를 메우며, 하루하루를 연결하는 생활의 근육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사라진 직업들이 여전히 소중한 이유다.

      6.2 물의 의미가 바뀐 순간, 직업도 사라졌다

      물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는 ‘목숨을 유지하는 액체’에서 ‘생활의 편의’로 진화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삶의 태도, 소비의 방식,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완전히 달라지게 했다. 물장수는 그런 전환의 한복판에서, ‘물의 고마움’을 가장 깊이 아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들은 말 없이 사라졌지만, 우리가 마시는 물 속에는 여전히 그들의 땀 한 방울이 남아 있다.

       

      7. 결론 │ 사라졌다고 해서 잊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물장수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이름조차 요즘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없어진 일’이 아니라, 도시가 커지고, 기술이 앞서며 묻힌 일이다. 직업은 시대에 따라 생기고 사라지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노력과 관계의 구조는 반드시 기록되어야 한다. 물장수는 ‘물’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목마름을 나누고, 땀을 흘려 생계를 지키던 이 시대의 사람이었다. 우리가 오늘도 맑은 물 한 컵을 마시며 당연함을 누리는 순간, 그들의 사라진 이름을 한 번쯤은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