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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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20.

    by. 월천공방

    목차

       

      잊혀진 직업, 삯바느질 여인의 하루

      1. 서론 │ 직업도 기억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단추가 떨어지면 새 옷을 사고, 바지 밑단이 풀리면 수선보다는 쇼핑몰을 먼저 떠올린다. ‘수선’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고, ‘재봉’은 취미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 골목마다 존재했던 삯바느질 여인누군가의 옷을 꿰매고 고치며 생계를 이어가던 진짜 생활 노동자였다. 그들의 일은 손끝에서 시작되어 옷깃에서 끝났지만, 그 바느질 선 하나하나에는 가난, 정성, 생존의 기술이 숨겨져 있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직업, 삯바느질의 하루를 되짚으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노동의 기억을 복원하고자 한다.

       

      2. 삯바느질이란 무엇인가?

      2.1 ‘삯’과 ‘바느질’의 의미적 결합

      ‘삯’이란 돈을 받고 하는 노동의 대가이고, ‘바느질’은 바늘과 실로 천을 꿰매는 작업이다. 즉 삯바느질누군가의 옷을 대신 꿰매주고 받은 소액의 임금이었다. 단순한 손바느질만이 아니라, 때로는 미싱, 재단, 손세탁까지 포함된 복합 노동이었고, 특히 여성들이 집안에서 수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계 수단 중 하나였다.

      2.2 삯바느질의 영역은 어디까지였나?

      • 단추 달기, 밑단 수선, 소매 줄이기
      • 아이 교복 제작, 침구류 바느질, 배냇저고리 제작
      • 상복 맞춤, 동네 체육복 제작, 부엌 앞치마 수선
      • 주문제작까지 가능했던 다용도 여성 노동

      삯바느질은 단지 바늘을 든 여인의 기술이 아니었다. 주문, 상담, 제작, 수선, 납품, 회계까지 담당했던 일인 기업이자 생활공예의 일상 버전이었다.

       

      3. 삯바느질 여인의 하루 – 손끝으로 이어낸 생계

      3.1 새벽은 준비의 시간

      새벽이 되면 삯바느질 여인은 먼저 어제 맡은 옷을 정리하고, 고객별 작업량을 노트에 써 내려간다.
      바늘과 실, 자, 분필, 재단가위, 시침핀, 골무, 줄자를 꺼내어 하루의 첫 바느질을 시작한다.

      • 고객 1: 아들 교복 바지 수선
      • 고객 2: 아버지의 고무줄 바지 줄이기
      • 고객 3: 내일 상가에 갈 예정인 여인의 검은 상복 손질

      이 일의 시작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기억’과 ‘맞춤’에서 시작되었다.

      3.2 오전은 바느질, 오후는 재봉틀

      재봉틀은 삯바느질 여인의 핵심 노동 도구였다. 미싱은 덜커덩거리며 돌아가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같은 선을 여러 번, 같은 스티치를 수없이 반복했다. 작업의 리듬은 음악이 아니라 정밀함과 집중력이었다. 손바느질은 더 섬세하고 조용한 작업이었다. 특히 아기 옷이나 속옷 같은 민감한 부분은 늘 손으로 마무리하며 촉감과 안감의 완성도까지 고려했다.

      3.3 점심도 없이 이어지는 작업

      점심은 늘 늦거나 건너뛰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주문은 “오늘 안에 부탁해요”, 혹은 “내일 아침까지는 꼭 돼야 해요”라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삯바느질 여인의 하루는 시간에 쫓기고 고객 약속에 묶인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3.4 저녁은 고객 응대와 수금

      고객이 찾아오는 시간은 대개 해 질 무렵이었다. 자녀와 함께 옷을 들고 와서 피팅을 하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시 수정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수금은 늘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다음에 줄게요”, “돈이 좀 부족한데 괜찮을까요?” 이런 말은 일상이었고, 고된 하루의 대가가 반으로 줄어드는 날도 많았다.

       

      4. 삯바느질 직업의 사회적 배경

      4.1 여성 노동의 형태로 자리 잡다

      삯바느질은 주로 여성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경제 활동이었다. 남성 중심의 산업 구조 속에서, 여성에게 허락된 일터는 가사노동과 삯일 정도였다. 그 중 바느질은 사회적으로도 비교적 ‘정숙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가난한 여인들이 생계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직업군이었다.

      4.2 재래시장과 함께 움직인 지역 경제

      삯바느질 여인들은 재래시장 단골, 동네 가게, 교회 지인 등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작업을 받아 운영했다. 이들은 시장 상인과 협업해 옷감이나 실을 떼어 오기도 하고, 서로의 아이 옷을 만들어주는 비공식적 경제 생태계를 형성했다.

       

      5. 삯바느질이 사라진 이유는?

      5.1 기성복 산업의 대중화

      1970년대 이후, 대량 생산된 기성복이 시장에 퍼지면서 수선보다 교체가 더 싸고 빠른 방식이 되었다. H사, N사, T사 같은 의류 브랜드가 시장을 점령하면서 삯바느질의 입지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5.2 거리 기반 공동체의 해체

      삯바느질은 단골 고객과의 신뢰, 입소문 마케팅이 중요한 직업이었다. 하지만 도시 재개발, 아파트화, 소규모 상점 폐쇄 등으로 골목 중심의 삶이 해체되면서 고객층 자체가 사라졌다.

      5.3 여성 일자리의 다변화

      교육 기회와 사회 진출이 확대되며 여성들도 다른 형태의 직업을 갖게 되었다. 삯바느질은 더 이상 “최후의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사라질 수밖에 없는 전통 노동 유형으로 전락하게 된다.

       

      6. 삯바느질의 직업 문화적 의미

      6.1 한 땀 한 땀이 삶이던 시절

      삯바느질은 단순히 ‘옷을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 마모된 생활을 다시 붙여주는 노동의 미학이었다. 바늘과 실은 그녀들에게 생계의 도구이자 타인의 삶을 함께 봉합하는 연결 고리였다.

      6.2 ‘버림’보다 ‘고침’이 더 아름다웠던 문화

      지금은 옷이 해지면 버리지만, 그 시절엔 옷에 덧댐천을 대고, 구멍을 감치고, 실로 색을 맞추어 꿰맸다. 그 행위 속에는 물건을 아끼고, 시간을 존중하며, 사람을 기억하는 태도가 있었다.

       

      7. 결론 │ 직업은 사라지지만, 삶은 기억되어야 한다

      ‘잊혀진 직업’이란 표현에는 두 가지 함의가 있다. 하나는 그 직업이 더 이상 경제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는 의미, 다른 하나는 그 직업이 지녔던 인간적인 가치까지 잊히고 있다는 의미다. 삯바느질 여인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들의 바늘과 실은 정성, 절약, 생존, 그리고 정직함을 꿰매던 도구였다. 우리는 지금도 옷을 입는다. 그러니 한 번쯤은 그 옷의 시작과 끝에서 누군가의 손끝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사라진 일자리의 문화사, 그리고 우리가 복원해야 할 노동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