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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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5. 12.

    by. 월천공방

    목차

      1. 서론 │ 뜨거운 물과 때밀이, 공동체 위생의 상징이었던 시절

       

      한때 대한민국의 도시 골목과 시골 마을에는 어김없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공중목욕탕이 있었다. 그곳은 단순히 몸을 씻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계절과 계절이 만나는 사적이고도 공적인 공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때밀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그들은 타인의 몸을 정성스럽게 닦고, 피부의 묵은 때를 벗겨내며, 단순한 위생 행위를 넘어서 사회적 돌봄과 접촉의 노동을 수행했다.

      이 글에서는 공중목욕탕 문화의 상징이자 대중 위생의 실천자였던 ‘때밀이’의 직업을 조명하며, 그들이 남긴 사라진 손기술의 가치
      왜 이 직업이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문화사적·사회위생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2. 때밀이의 직업 형성 – 대중 위생의 실천자

      2.1 공중목욕탕의 등장과 확산

      공중목욕탕은 조선시대 목욕재계의 전통과 일제강점기 위생 개혁 정책을 거치며 20세기 중반, 도시화와 함께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1950~1980년대에는 개인 욕실이 없는 가정이 많았고, 목욕은 주 1회 또는 명절마다 하는 가족행사이자 지역 커뮤니티 활동이었다. 공중목욕탕은 단순한 욕실이 아닌 사회적 인프라였으며, 그 속에서 때밀이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

      2.2 직업으로서의 때밀이

      때밀이는 전문적인 손기술을 갖춘 위생 서비스 노동자였다. 고객은 작은 의자에 앉아, 거칠지만 숙련된 손길에 몸을 맡겼고, 그 과정은 단지 피부의 때를 벗기는 차원을 넘어 노동, 피로, 사회적 피막을 씻어내는 의례적 행위이기도 했다. 때밀이들은 대부분 목욕탕 업주 또는 협회에 소속, 일정 수입을 일정 비율로 분배하거나, 일일 단가제로 서비스료와 팁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이들은 ‘때밀이 타월’ 사용법, 피부 자극 완화 요령, 손목 스냅 조절 등 정밀한 신체 감각과 반복된 경험으로 자신의 기술을 완성해갔다.

       

      3. 위생과 돌봄의 경계에서 – 때밀이의 사회적 의미

      3.1 대중 위생의 실천자

      때밀이는 단지 때를 밀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위생 개념이 미비하던 시절, 가장 현실적인 대중 위생의 실천자였다. 몸에서 묵은 각질과 피지를 제거하고, 모공을 열어주는 일은 감염 예방, 피부 건강, 청결 유지에 있어 중요한 위생 행위였다. 이들은 건강보험 체계가 취약하던 시절, 보건과 위생을 몸으로 감당한 숨은 노동자들이었다.

      3.2 물리적 접촉이 주는 심리적 위안

      때밀이의 손길은 때로 노년층의 외로움을 달래는 유일한 접촉이 되기도 했다. 타인의 몸을 직접 만진다는 행위는 오늘날엔 어색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신뢰와 위안, 공동체적 친밀감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아이부터 어른, 노인까지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물에 몸을 담그고 같은 손길로 정화받는 과정은 사회적 위계와 거리를 일시적으로 지워주는 소박한 평등의 체험이기도 했다.

      4. 직업의 쇠퇴 – 사라져가는 손의 기술

      4.1 가정 내 욕실 보급과 목욕탕 이용 감소

      1990년대 이후 아파트 중심의 주거 구조와 가정 내 욕실 보급률 상승은 공중목욕탕의 이용 빈도 자체를 급감시켰다. 목욕탕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때밀이 역시 고객 접점이 사라지는 구조적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4.2 위생법 규제 강화와 접촉 기피 문화

      21세기 들어 개인 위생에 대한 민감성이 강화되면서, 타인과의 신체 접촉에 대한 거리감도 커졌다. 감염병, 피부 질환 전파 우려, 고객 클레임 증가 등으로 때밀이 업무는 법적, 위생적 부담이 커진 고위험 저소득 직종이 되어갔다. 특히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은 공동탕 문화 자체에 치명타를 입혔고, 때밀이 서비스는 많은 지자체에서 운영 제한 또는 금지 대상이 되기도 했다.

       

      5. 때밀이의 문화사적 유산과 기억

      5.1 근현대 위생 문화의 구술자들

      때밀이는 공중보건의 미시적 실천자이자 도시 서민문화의 정체성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땀과 비누, 피지와 수증기,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몸에 대한 이해가 녹아 있었다. 목욕탕의 냄새, 강한 손길의 리듬, 스팀이 서린 거울과 미끄러운 타일 바닥은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기억 속 풍경이다.

      5.2 감각의 유산으로 남은 직업

      때밀이의 기술은 자동화될 수 없었다. 그것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피부와 피부의 교감, 손끝의 감각, 고객의 표정을 읽는 공감력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그 손끝은 여전히 대한민국 대중 위생의 역사 한 자락에 살아 있다.

       

      공중목욕탕 때밀이의 사라진 직업과 대중 위생

      6. 결론 │ 때를 밀던 손에서 벗겨진 기억

      때밀이라는 직업은 단순한 청결 서비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어루만지는 직업, 그리고 한 사회의 위생 개념과 공동체 경험이 손끝을 통해 구현되던 순간이었다. 이제 우리는 혼자 씻고, 개인 공간에서 조용히 목욕을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손이 나의 등을 밀어주던 그 감각은 단순한 물리적 행위가 아닌, 공동체적 연결감과 정서적 위안의 상징이었다. 때밀이의 사라진 손은 지금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가장 인간적인 접촉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