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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 ‘아이스께끼’ 소리가 들리면, 여름이었다
“아이스께끼요— 아이스께끼 왔어요—”
골목 저편에서 울리던 그 외침은 한여름 더위 속, 아이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지금은 아이스크림 하나쯤 냉동실에 늘 있는 시대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그 얼음 막대 하나는 여름의 전부였다. 아이스께끼 장수는 단순히 시원한 간식을 파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는 어린이들의 일상 속 이벤트였고, 무더운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이동하는 여름’ 그 자체였다. 이 글은 오늘날 잊혀진 계절직업, 아이스께끼 장수의 모습과 그가 남긴 사회문화적 의미와 거리의 기억을 함께 살펴본다.
2. 아이스께끼 장수란 누구였는가?
2.1 ‘아이스께끼’란 단어의 유래와 형태
‘아이스께끼’는 ‘아이스케이크’의 일본어 발음을 변형한 것이다. 실제로는 얼음을 얼려 만든 막대 아이스크림을 지칭했고, 당시에는 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졌다:
- 막대기 하나에 한 번 얼린 형태
- 주로 청포도맛, 딸기맛, 우유맛, 콩물맛 등
- 비닐포장 없이 그대로 얼린 후 신문지에 감싸 판매
- 냉장설비 없이 드라이아이스와 톱밥을 이용해 보냉
이 상품을 판매하던 이동 상인이 바로 아이스께끼 장수였다.
2.2 주로 어떤 사람이 했는가?
아이스께끼 장수는 계절 한정으로 활동하는 여름 계절직업자였으며 공장에서 아이스께끼를 납품 받아 도보 혹은 자전거, 리어카로 이동 판매
- 어떤 경우는 집에서 얼려 만든 제품을 직접 팔기도 했다
고정 점포 없이 골목마다 누비며
학교 앞, 놀이터, 시장 어귀에서
한 여름 동안만 활동하는 이동형 아이스크림 상인이었다.
3. 아이스께끼 장수의 하루 – 더위를 파는 장사꾼
3.1 여름 아침, 출발은 얼음 박스 채우기부터
이른 아침, 아이스께끼 장수는 아이스께끼 박스를 냉동 창고나 공장에서 수령하고 얼음 손실을 막기 위해 드라이아이스 + 톱밥으로 포장 아이들의 등굣길이나 학교 앞을 노려 오전 10시 전후에 거리로 나섰다. 그들의 수레는 단순한 운반도구가 아니라 이동형 냉동고, 어린이들의 여름 놀이터, 추억의 배달부였다.
3.2 외침과 벨소리, 기억을 깨우는 소리들
“아이스께끼—”라는 특유의 외침, 혹은 자전거 핸들에 달린 딸랑딸랑 방울소리는 골목의 무더위를 깨우는 신호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 아이들은 세뱃돈을 모아두었던 지갑을 꺼내거나 엄마 심부름으로 받은 천 원짜리를 손에 꼭 쥐고 신발도 제대로 안 신고 뛰어나왔다. 아이스께끼 장수는 그들에게 더위의 해방자였고, 한편으론 모두가 기다리는 여름의 주인공이었다.
4. 아이스께끼 장수가 만든 골목 문화
4.1 어린이 대상 유통의 시작
아이스께끼 장수는 당대 골목 유통의 가장 직접적인 소비자 대상이 ‘어린이’였던 최초의 직업 중 하나였다. 이전까지 물건은 가장인 아버지, 살림을 책임진 어머니가 소비했다. 하지만 아이스께끼는 아이들이 직접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상품이었다. 이것은 어린이 소비자 문화의 출현이자 어린이를 위한 맞춤형 상품·마케팅·판매 전략의 출발이었다.
4.2 놀이와 경제의 접점
아이스께끼 장수는 단지 상품만 팔지 않았다. 어떤 장수는 아이스께끼 포장지에 ‘당첨’ 도장을 찍어 재방문 유도를 하기도 했고, 두 개를 사면 세 번째를 반값에 주는 방식의 판매 전략도 구사했다. 이러한 방식은 아이들 사이의 교환경제, 친구와 함께 사면 이득이라는 경험, “내가 산 게 더 맛있다”는 주관의 탄생이었다. 결국 아이스께끼는 단순한 간식이 아닌 문화적 놀이이자 교육적 경험이 되었다.
5. 왜 아이스께끼 장수는 사라졌는가?
5.1 냉동 유통의 대중화
1990년대 이후 "대형 마트와 슈퍼마켓, 편의점의 전국 확산, 가정용 냉장고·냉동고의 보급" 이 모든 것이 ‘아이스께끼를 직접 사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어디서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구할 수 있고, 종류도 더 많고, 포장도 위생적이며,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이로써 이동형 아이스크림 판매는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
5.2 식품위생법과 안전 문제
이동형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비위생적인 조건에서 유통되었고, 한여름의 온도 문제, 유통기한 미표시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2000년대 이후 식품위생법이 강화되고 길거리 식품 판매에 대한 규제가 확대되면서 아이스께끼 장수는 자취를 감추었다.
6. 아이스께끼 장수가 남긴 문화사적 기억
6.1 계절과 감각을 연결하는 장사
아이스께끼 장수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촉각·미각·청각·시각적으로 체화시켰던 존재였다. 소리로 계절이 시작됐고 입안에서 단맛과 시원함이 퍼졌으며 얼음결이 혀끝에 닿는 촉감이 기억되었고 반투명한 색의 얼음이 빛을 받아 아름다웠다. 이 모든 감각은 단지 ‘맛’이 아닌 계절 전체의 체험이었다.
6.2 상업과 정서의 공존
아이스께끼 장수는 상인이었지만, 그는 판매자이면서도 기억의 전달자였다. 그가 파는 것은 얼음덩이였지만, 아이들의 마음에 남은 것은 친구와 함께 나눠 먹던 순간, 마당에서 해 지기 전 하나씩 빨던 시간, 엄마 몰래 사먹다 들켜서 혼나던 장면.
아이스께끼는 삶의 단면이었고, 그 장수는 그 단면을 배달해주는 여름의 사자(使者)였다.
7. 결론 │ 여름은 계속되지만, 아이스께끼 장수는 없다
오늘날에도 여름은 찾아오고, 아이스크림은 더 다양해지고, 무더위는 여전히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더위를 설레게 만들던 딸랑이는 자전거 소리, 골목에서 들려오던 외침, 정해진 시간 없이 찾아오던 기쁨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스께끼 장수는 단지 여름 장사꾼이 아니었다. 그는 한 세대의 계절적 감성, 상업과 문화, 놀이와 추억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던 사람이다. 사라졌지만 여전히 기억되는 이 직업은 오늘날 우리가 자칫 잊기 쉬운
일상 속 정서의 가치와 계절의 감각성을 되새기게 만든다.'잊혀진 직업 사전 – 사라진 일자리의 문화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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